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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장흥 포구여행 *
먹빛 바다야,
갯바람속에 그리움이 스몄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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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드레일도 없이 바다에 바짝 붙어 가는 길을 따라 찾아간 옹암리 포구에서 만난
매생이 양식장 풍경. 어부가 대나무(장)를 개펄에 박아넣고 있다. 이렇게 바다에
헤아릴 수 없이 꽂혀진 대나무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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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흥의 유일한 섬인 노력도 앞을 지나는 해안도로. 이 도로를 타고 계속 달려가면
은박지처럼 반짝이는 바다로 들어가버릴 것 같다. 노력도는 지난해 연말 연륙교로
육지와 이어졌고, 지금 섬을 도는 해안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 툇마루 앞에 낡은 재봉틀이 놓인 소설가 이청준의 생가.
바다에 꽂힌 나무가 만들어내는 조형적인 풍경
갯 것을 길러내는 풍광이 이렇듯 조형적일 수 있을까. 장흥군 대덕읍 내저마을의 작은 포구 앞에 서면 바다에 꽂힌 1만1000여개의 대나무가 그려내는 독특한 바다 풍경을 만난다. 독특한 향과 부드러운 질감의 해초인 매생이를 길러내는 양식장이다. 매생이는 해마다 11월에 시작해서 12월 중순무렵부터 이듬해 2월말까지 수확한다. 애초에는 장흥 일대의 바닷가 마을에서나 먹던 것을, 최근에는 이른바 ‘웰빙식품’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매생이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장흥 출신 소설가 이승우의 단편소설 ‘샘섬’과 ‘마음 속의 지도’에서 매생이와 관련된 대목을 찾아보자. 그는 소설에서 “가난했던 시절 허기를 때우기 위해 먹었던 매생이는 고향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암호’”라고 썼다. 그러면서 “고향(장흥) 사람들은 뜨거워도 김을 내지 않는 매생이처럼 내면의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차가운 갯바람에 자라는 매생이의 대표적인 산지가 바로 전남 장흥 일원의 바다다. 어민들은 매년 11월초쯤 폭 2.4m 길이 4.5m의 가는 대나무로 엮은 매생이 발을 연안의 바위에 붙여 자연에서 매생이 씨앗을 받는다. 이렇게 채묘한 매생이를 갯벌에 굵은 대나무(장)를 박고 매달아 바다에 넣는다. 이렇게 매생이를 바다에 넣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매생이 발을 막는다’고 표현했다. 이곳 주민들은 매생이 발 10개를 묶어서 1척이라고 부른다. 35가구의 내저마을은 올해 1000척의 매생이를 넣었다고 했다. 대략 1척을 바다에 지탱하기 위해서는 11개의 대나무(장)를 바다에 꽂는다. 그러니 작은 포구에 꽂힌 대나무만 1만1000개가 되는 셈이다.
20년전쯤 가장 먼저 매생이 양식을 시작했다는 내저마을의 김삼봉(46) 어촌계장은 “바닷물 온도와 일조량에 맞춰 어민들은 이른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 매생이발의 수심을 조정한다”고 했다. 따뜻한 날 매생이 발을 너무 띄워주면 삭아버리고, 추운 날 너무 깊이 넣으면 자라는 것이 더디다는 것. 이렇게 매생이는 장흥의 겨울바다 매운 갯바람 속에서 자라고 있다.
정남진에서 뒤돌아 삼산호를 붉게 적시는 노을을 보다.
최근 몇년 전부터 장흥군은 ‘정남진’을 내세우고 있다. 동쪽에 ‘정동진’이 있고, 북쪽에 ‘중강진’이 있다면 남쪽에는 장흥의 ‘정남진’이 있다는 것. 서울의 정남쪽으로 선을 그으면 바로 삼산방조제 부근의 바다와 만나고 그곳이 바로 정남진이라는 것이다. 듣자면 그럴듯하지만, 정남진이란 왠지 억지스럽다. 다산초당을 갖고 있는 강진이나, 차밭으로 유명한 보성을 이웃에 두고 있어 대표이미지를 내세운 ‘호객’이 필요했던 사정이야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정남진이란 이름은 오히려 장흥의 매력을 가리고 마는 느낌이다. 게다가 지금은 정남진이 원모양의 조형물을 세워놓은 삼산방조제쯤인지, 아니면 장흥군 전체를 그렇게 부르는지조차 불명확하다. 삼산방조제는 장흥일원의 별 특별할 것 없는 수많은 방조제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아간 이유는 정작 정남진이란 이름이 붙은 바다보다는, 반대편의 방조제로 막아서 만든 삼삼호의 핏빛 노을을 만나기 위해서다. 호수는 작지만, 갈대 숲위로 새빨간 노을이 물들 때의 아름다움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바다를 끼고 있는 장흥에서 바다를 끼고 달리는 드라이브 코스가 없을 리 없다. 잘 차려놓은 카페며 즐비한 그런 바다는 아니다. 오히려 조금은 남루하지만, 그 남루함이 오히려 진짜 바다의 진면목으로 다가오는 그런 바다다. 옹암리로 드는 길이 바로 그렇다. 구간은 짧지만, 바다를 이렇듯 바짝 끼고 있는 길은 흔치 않다. 길과 바다 사이에는 가드레일도 없다. 손만 내밀면 바다에 담글 수 있을 것 같다.
이진목에서 시작해서 삭금을 지나 회진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바닷길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쪽 길은 바다를 끼고 야트막한 구릉을 오르내리는데, 바다에 꽂힌 대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회진면에서는 죽도를 넘어 노력도로 이어지는 길도 좋다. 노력도는 장흥에서 유일한 섬. 지난해 말 연륙교가 놓이면서 육지가 됐다.
70여가구가 거주하는 노력도에는 아직 길다운 길이 없다. 300억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번듯한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비포장도로다. 그나마 다리가 닿은 마을에만 짧은 길이 있을 뿐, 섬의 다른 쪽으로 가는 길은 아예 없다. 하지만 작은 지금 한창 길을 내는 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바위를 깨고, 흙을 메워 섬을 도는 길은 윤곽이 드러났다. 내년 말쯤 길이 완성되면, 금당도와 소록도, 조약도, 평일도 등 이쪽 바다의 낭만적인 섬들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 코스가 만들어지리라.
장흥에 갈 때 책 한권쯤은 꾸려야 하는 이유
장흥에 가자면, 가방 안에 몇 권의 책을 넣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장흥의 절반쯤만 보고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장흥 출신의 문인들은 이루 열거하기조차 숨가쁘다. 송기숙,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 이대흠 …. 고작 인구 4만4000여명의 군 단위에서 이렇듯 많은 문인들이 났다는 것이 놀랍다. 이들 문인에게 문학의 씨앗이 돼준 것은 허름하면서도 진득거리는 득량만의 바다가 아닐까.
이청준의 생가는 대덕에서 회진으로 가는 해안도로 쪽의 진목마을에 있다. 오후 나절, 구릉의 비탈면에 들어선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득량만의 바다가 은박지처럼 반짝거린다.
마을주민들은 이청준의 생가를 찾아온 외지인들에게 더할 수 없이 친절하다. 콩을 고르던 노인들에게 외지인이 길을 묻자, 일을 작파하고 앞장부터 선다. 묻지 않았는데도 책보를 끼고 돌아오던 유년시절의 이청준에 대한 기억이며, 일화들을 이야기해준다.
책을 챙긴다면 되도록 이청준의 단편 ‘눈길’이 담긴 단편집을 택하는 게 좋겠다. 소설속의 어머니는 살던 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 의탁할 데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제 남의 것이 돼버린 집에서 객지에서 공부하는 아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고는 누가 볼 새라 이른 새벽 눈이 내린 산길을 함께 걸어 차부까지 바래다준다. 버스는 야속하게 아들을 태우고 휭하니 떠난다, 아들의 기억은 여기까지지만, 십여년이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날 어머니가 아들이 딛은 눈 위의 발자국만을 딛고 혼자 돌아오며 눈물을 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잔잔한 모성을 다룬 자전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고향 집에 대한 작가와 어머니의 기억이 생생하게 읽힌다. 고향집이 남의 손으로 넘어갔지만, 아들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던 어머니 얘기며, 이른 모자가 새벽 눈길을 걷던 이야기를 읽던 이야기를 읽을라치면 콧날이 시큰해온다. 당시 고교 2학년이던 이청준과 어머니가 이른 새벽에 넘던 눈내린 고갯길이 남아있으면 좋으련만, 마을 뒤편으로 난 그 길은 산자락을 타고 넘기 전에 희미해지고 만다.
고향이 장흥군 회진면 신상마을인 소설가 한승원은 12년 전에 안양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란 집을 짓고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해산토굴 앞은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여닫이(水門)’ 바다다. 이 바다에는 ‘한승원 문학 산책로’가 있다. 바다를 끼고 나 있는 산책로에는 한승원이 지은 소설이며, 시구절이 새겨진 비석들이 줄지어 서있다. 산책로는 800m에 불과하지만, 하나 둘씩 비석에 새겨진 글을 읽고, 모래사장에 올려진 목선과 먼 바다를 내다보며 걷자면, 한 두시간쯤은 훌쩍 지나고 만다. 그 산책로의 화강암으로 깎아낸 시비에서 골라낸 시구절 하나.
…늦가을 어느 저녁에 여닫이 바다가 / 지는 해를 보내기 싫어 소주 한병에 취하여 / 피처럼 불타버리던 것 보았습니까, 달도 별도 없는 / 겨울밤 눈보라 속에서 여닫이 바다가 혼자 외로워 /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던 것, 그대는 알아채셨습니까./… 한승원의 <여닫이 바다의 혼례> 중에서.
옛 마을에 들어 자연스러운 멋을 만나다.
장흥에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억새로 유명한 천관산이야 이미 전국적인 명성을 떨치는 곳이고, 봄철의 철쭉이 만개하는 일림산도 잘 알려진 곳이다. 봄이면 도라지꽃이 만개하는 한재도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장흥에는 지금 넓은 들과 자연스러운 구릉 사이의 길을 따라 솜털 같은 꽃을 피운 억새와 갈대들이 무성하다.
장흥에서는 방촌마을을 그냥 스쳐지날 수 없다. 장흥 위씨의 씨족마을인 방촌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가옥이 5채나 되고, 마을 단위의 유물전시관까지 있다. 그뿐이 아니다. 천연기념물을 포함해 28그루의 노거수도 서 있다. 이곳에는 호남실학의 대가로 일컬어지는 존재 위백규(1727∼1798)의 생가와 같은 가문의 위성탁, 위성룡, 위성렬, 위봉환의 한옥이 있다. 이곳의 한옥들은 안동의 그것과는 다르다. 안동일대의 대갓집 한옥들이 높은 들보와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면, 이쪽의 집들에서는 포근하고 자연스러운 운치가 느껴진다.
돌담을 타고 오른 풀들이며, 후원의 동백나무와 대나무들이 집과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없다. 오랜 세월에 집의 위세는 쇠락했지만, 곳곳에 심어놓은 가을꽃들이 가득 피어나 집을 지킨 이의 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들 옛집 중 백미는 고영애(82)씨가 홀로 지키고 있는 위성룡 가옥의 안채로 드는 돌계단 길. 붉고 노란 가을꽃들이 계단 길섶에 가득 피어있다. 또 이 집에는 부엌의 아궁이와 부뚜막, 가마솥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지금도 군불을 때고 있다. 장작이 타탁거리며 타오르고 나무 타는 매캐한 냄새가 정겹다.
천관산 자락에 들어서 있는 장천재는 묘각이지만, 위백규 선생이 강학을 하던 장소로, 일대 유림들이 시문을 나누던 곳으로 더 알려져 있다. 당초 이 자리에는 고려때 창건된 장천암이란 암자가 있었지만, 암자가 쇠락한 뒤 조선 후기에 장흥 위씨들이 그 자리에 장천재를 세웠다. 장천재 출입문인 청뢰문 앞에는 운치있게 가지를 틀고 있는 600년 된 소나무가 육중하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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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서해안고속도로나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갈 수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종점인 목포나들목으로 나와서 2번 국도를 타고 독천과 강진을 지나면 장흥이다.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광주에서 15번 국도를 타고 화순으로 간 뒤 이정표를 따라 능주를 거치면 장흥과 보성으로 갈림길을 만난다. 장흥읍내에서 바다를 보려면 남쪽으로 30~40분쯤 더 달려야 한다.
◆ 어디서 묵고 무엇을 먹을까
장흥은 해조류인 매생이의 본고장이다. 국을 끓여먹는 매생이는 향이 독특하고, 입안에서 죽처럼 부드럽게 녹는다. 서해와 동해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남해안에서만 자라는데, 남해안 중에서도 청정 해역의 내해와 오염되지 않은 갯벌에서만 볼 수 있다. 오염된 민물에서 볼 수 있는 이끼류와 닮아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매생이는 조금이라도 바다가 오염되면 가장 먼저 자취를 감춰버린다. 매생이에는 철분과 칼슘이 많아 고혈압 등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생이 국을 끓여먹었다는 기록은 오래됐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매산태로 소개돼 있는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럽고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매생이는 남해안의 어촌마을 인근에서만 먹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출범후, 호남에 연고를 둔 민주당 인사들이 주로 다니던 서울의 한정식집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뒤,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수요가 크게 늘면서 가격도 뛰어서 4~5년 전만 해도 생산지에서 재기(400g)당 2000원 아래이던 것이, 최근에는 4000~6000원선을 넘어선다.
매생이는 겨울철인 12월 중순이후부터 2월말까지 두 달여동안 수확한다. 올해는 첫 매생이를 12월20일 전후해서 맛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확기가 아닌 봄부터 가을까지 식당에서 내놓는 매생이는 모두 냉동보관한 것들이다.장흥에서는 대부분의 식당들에서 모두 매생이국을 내놓는다. 매생이는 굴을 넣어 끓이는 것이 보통인데, 장흥사람들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매생이국이 진짜”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장흥에서도 돼지고기를 넣고 매생이국을 끓여내는 식당이 없어 진짜로 그런지 확인하긴 어렵다.
장흥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바로 된장물회다. 된장을 넣은 물회라니 거부감이 앞서지만, 맛만큼은 나무랄 데 없다. 말 그대로 차가운 된장물에 열무김치를 종종 썰어놓고, 식초와 고춧가루를 친 뒤 회를 말아 내오는데, 새콤하면서도 짙은 맛이 일품이다. 주민들은 여름에 먹어야 제맛이라고 했지만, 이즈음의 맛도 손색이 없다. 주민들이 ‘진짜 장흥식 물회’로 꼽는 곳이 회진면 시장통의 ‘우리집 횟집’(061-867-5208). 이에 반해 외지사람들 입맛에 맞춘 집으로는 회진면사무소 옆의 ‘청송횟집’(061-867-6245)이 대표적이다. 썰어넣는 회의 양이나 생선의 종류에 따라 대략 1인분에 7000~8000원 정도를 예상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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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 겨울 포구
짧은 해가 아쉬워 호수도 물들였구나 |

▲ 서울의 정남쪽에 있다고 해서 ‘정남진’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삼산방조제에서는 정작 바다보다는, 방조제 뒤쪽 삼산호의 불붙는 듯한 석양이 몇배 더 아름답다. 홀로 계신 고향의 노모를 모시기 위해 2년 전에 귀향했다는 김재철(62)씨가 삼산호에서 쪽배를 타고 그물을 걷으러 가고 있다. | | |
전남 포구는 겨울 여행과 썩 잘 어울립니다. 포구를 감싸고 있는 축축한 습기와 소금기 머금은 바람. 물결을 따라 끄덕이고 있는 낡은 목선과 불쏘시개가 활활 타오르는 드럼통 주위에서 언 손을 녹이는 어부들. 겨울 포구를 상상하면 그런 풍경이 먼저 떠오릅니다. 사실 화장기를 걷어낸 포구의 맨 얼굴은 본래 이렇지 싶습니다. 그 겨울의 포구를 찾아갑니다, 전남 장흥. 전남 보성의 차 밭도 건너뛰고,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에도 한눈팔지 않고 장흥의 득량만으로 향합니다.
장흥의 바다에서 개펄에 꽂힌 수십만개의 대나무를 만났습니다. 조형미 넘치는 농사풍경을 꼽으라면 육지에서는 전남 보성의 차밭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바다 쪽에서는 매생이 양식장을 첫손으로 꼽아야 할 것같습니다. 보성에서 구릉에 심어진 차나무가 그려내는 유려한 곡선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면, 장흥의 바다에서는 빽빽하게 바다에 꽂아 놓은 수십만개의 대나무들이 회화적인 그림을 그려냅니다.
장흥의 내저마을과 선자마을, 그리고 삭금마을의 포구. 그곳의 바다에는 몇 길이 넘는 대나무들이 끝간 데 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매생이의 향긋한 맛을 보려면 아직 보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지만, 바다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의 대숲’과 그 숲이 바다에 반영되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 장흥의 바다를 찾아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장흥을 찾았던 날은 마침 달빛이 환한 보름날이었습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 둥글게 달이 뜬 득량만의 밤바다는 어머니의 품속같이 아늑하고 또 포근했습니다. 느린 유속 탓에 갯벌이 유독 무르고 또 깊다는 장흥의 바다. 이 아늑한 바닷가 마을에서 소설가 이청준, 한승원, 이승우가 나고 또 자랐습니다. 이 바닷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이청준은 단편소설 ‘눈길’에서 가슴 울컥한 어머니의 모습을 참 눈물겹게 그려냅니다.
장흥군은 “강릉에 ‘정동진’이 있다면, 장흥에는 서울의 정남쪽인 ‘정남진’이 있다”며 정남진을 장흥여행의 ‘아이콘’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남진’이란 억지스러운 이름에서는 계획적으로 관광객들을 유인하려는 의도가 먼저 읽힙니다.
사실 정남진의 바다에 서면 별다른 감흥이 안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지 싶습니다. 그럼에도 장흥에서 정남진을 가봐야 하는 까닭은 정남진보다는, 몸을 돌리면 방조제 뒤쪽 삼산호의 핏빛 노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날의 짧은 해가 천관산 자락으로 넘어갈 때, 석양이 호수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풍경은 참으로 장엄해서 감격적이기까지 합니다.
겨울 포구를 만나러 가는 여행. 가방 안에는 이청준의 ‘눈길’이 실린 단편집이나 한승원의 ‘그 바다 끓며 넘치며’ 같은 책 한 권쯤은 필수입니다. 선자마을에서 삭금마을을 돌며 은박지같이 반짝거리는 바다를 만나고 난 뒤, 달 뜬 겨울 바다가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숙소에서 사그락사그락 책장을 넘겨보면 어떻겠습니까. 여행을 좀 늦춘다면 뜨끈하게 속을 덥히는 매생이국의 깊은 맛도 볼 수 있을 겁니다. |
<출처> 2007.11. 28 / 문화일보
장흥 = 글·사진 문화일보 박경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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